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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1947) 본문

항공/인도 파키스탄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1947)

lightbulb4999 2023. 3. 13. 14:00

 

출처: Wikipedia, Indo-Pakistani War of 1947-1948

캐시미어는 인도 서북부의 카슈미르 지방에서 나는 산양의 털로 짠 고급 모직물이다. 부드럽고 윤기가 있으며, 보온성이 좋아 고급 양복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정작 카슈미르 지역만큼은 전혀 부드럽지 않다. 카슈미르 지역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종교 지도자의 통치를 받아왔다. 14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이 카슈미르 지역을 침략하면서 주민들 대다수를 강제로 이슬람교로 개종시켰다. 이후에도 무굴 제국과 아프간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19년에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탄생한 시크교도 란지트 싱이 아프간 군을 물리치고 카슈미르 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1846년 제1차 영국-시크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면서 시크교도들의 카슈미르 지배는 막을 내린다. 이후 동인도 회사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 카슈미르는 동인도 회사 총독이었던 ‘하딩’이 300 마일이나 되는 병참선 상에 영국군을 두는 것은 굴레의 속박을 지는 것이라며 카슈미르를 믿을만한 토착 세력에게 주어 위탁 경영을 하도록 했다. 그렇게 영국은 750만 루피에 카슈미르 지역을 라자 굴랍 싱에게 넘겼다. 이때 카슈미르 주민의 90%가 무슬림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47년 6월 3일, 영국 정부는 인도 독립안을 발표한다. 이때 영국 정부는 550여 개에 달하는 인도 내 여러 소국 각자가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선택하라고 했다. 얼핏 보면 자유로운 선택지를 준 것처럼 보이나 인도 제국 안에서 종교 갈등을 일으켜 놓고선 무책임하게 떠나는 셈이었다. 그러자 인구의 77%가 무슬림이었던 카슈미르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말았다. 파키스탄과 인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분리 독립안도 등장하였으나 토후 세력과 각 정파의 무슬림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져 이뤄지지 못했다. 예를 들어 무슬림 사이에서도 파키스탄에 귀속하자는 세력과 분리 독립하자는 세력으로 의견이 나뉘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으며 지리적으로도 파키스탄에 가까웠으므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에 편입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지도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라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힌두교도였으므로 이슬람의 파키스탄에 합류하길 원치 않았다.

 

카슈미르 지역이 이렇게 갈등하고 있을 때,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 독립하더니그 다음날에는 인도가 독립을 선언한다. 결국 카슈미르 지역 내에서는 자신의 종교에 따라 다양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때 파키스탄에 귀속되길 원했던 세력에서 파키스탄의 파슈툰 부족을 개입시켜 카슈미르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호전적인 그들은 파죽지세로 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를 침공하였다. 그러자 카슈미르 통치자였던 마하라자 싱은 자신의 고향으로 피신했고, 급한대로 1947년 10월 26일, 인도령 가입 문서에 서명을 하고 인도에 도움을 요청한다. 오늘날 인도는 이 서명을 근거로 카슈미르가 인도령이라 주장한다. 반대로 파키스탄은 해당 문서가 조작된 것이며 지도자의 자유 의지가 결여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인도 군대가 카슈미르 지역에 투입되면서 1948년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파슈툰 부족이 주도를 점령하면서 시작되어 파키스탄은 전쟁 초기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나 1948년 5월 정규군을 투입하면서 양측 간의 전면전이 확실시되었다. 전쟁은 1949년 1월 1일, 유엔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막을 내린다. 그 결과 오늘날 카슈미르의 65%는 인도가, 나머지 35%는 파키스탄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우리나라의 휴전선처럼 통제선(Line of Control)이 그어지게 된다. 신기한 점은 전후 파키스탄이 자국 점령 카슈미르가 독립 정부임을 주장하는데 반해, 인도는 자신들이 점령한 카슈미르 지역을 인도의 한 개 주로 편입시켜버렸다.

 

이후 1954년 파키스탄은 미국과 동맹을 체결하였고 인도는 이에 대항하여 수상 네루가 소련을 방문하여 소련과 상호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냉전 시대 미국은 소련을 정찰하기 위해 또는 억지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근처에 공군기지가 필요했는데 이를 파키스탄이 제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파키스탄과 손을 잡았다. 당시 인도도 존재하였으나 인도는 이집트 및 중국과 함께 제3세계를 대표하는 독자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공군기지를 임대받기가 쉽지 않았다. 이밖에도 파키스탄은 1955년 소련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앙아시아 조약 기구(Central Treaty Organization, CENTO 또는 Middle East Treaty Organization, METO)에 가입하는 등 친미 노선을 유지한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친서방 노선을 견지하자 이에 대항하여 소련과 관계를 맺는다. 소련은 자신과 의견을 대립하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인도를 필요로 하였으며 이는 인도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둘은 냉전 시기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이런 관계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이후 카슈미르 분쟁에서 중국이 파키스탄을 돕게 만들고 반대로 소련은 인도를 지원하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가지게 된다.

 

* 힌두스탄어로 파탄족이라 부르며, 파키스탄의 우르두어로는 파슈툰족이라 부른다.

* 2022년 7월 8일에 작성한 글을 다시 올립니다.

 

참고자료 및 출처

  • 월간조선 이슬람 들여다보기, 무슬림이 다수임에도 힌두교도 군주가 인도 선택하면서 분단 by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우세평, 카슈미르 분쟁은 왜...? (1) by 분쟁 지역에 주둔하는 UN군
  • 종교 때문에 분단 국가가 되어버린 인도와 파키스탄 이야기 - 영국은 어떤 나라인가. (출처를 언급한 블로거)
  • The United Service Institution of India, India's Wars since Independence: A Concis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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